fnctId=bbs,fnctNo=167 게시물 검색 검색하기 제목 작성자 분류 전체 교수 직원 동문 재학생 동행 RSS 2.0 총 361 건 공통(상단고정) 공지 게시글 게시글 리스트 어려운 학우를 위하는 마음으로 매 학기 장학금 쾌척, 김윤민(미래교육원 콘서바토리) 학우를 작성자 김*현 조회수 1050 등록일 2022.06.02 첨부파일 0 가진 것을 나누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이 삶의 보람이자 쾌락이라고 말하며 묵묵히 선을 행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미래교육원 콘서바토리 성악과에 재학 중인 김윤민 학우다. 가수이자 3옥타브장인 이라는 보컬 학원 운영자, 활발하게 활동하는 유튜버이기도 한 김윤민 학우는 그 모든 일은 수단일 뿐이고 진정한 목적은 해외에 간호학교를 설립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타인을 돕는 마음이 세대교체가 되어 쭉 이어지기를 바란다는 김윤민 학우를 만나 여러 다채로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Q.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인터뷰를 읽을 독자분들에게 간단한 소개와 함께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명지대학교 미래교육원 콘서바토리 성악과에 재학 중인 김윤민입니다. 3옥타브 장인이라는 보컬 학원을 운영하고 있고, 그 외에도 다른 법인 회사들을 두 개 정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원래 실용음악을 공부했는데,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마음으로 올해 성악과에 입학했어요. 제가 중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학교에 다닌 적이 없어 입학 전에는 막연하게 교수님들에 대한 어려움을 느꼈는데 너무 친절하시고, 따로 수업까지 해 주실 정도로 열정적이셔서 쉽게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Q. 매 학기 300만 원씩 학과를 위해 장학금을 기부해주시기로 했는데요, 쉬운 결심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기부를 결심하신 구체적인 배경과 과정이 궁금합니다. A. 올해 콘서바토리에 장애인 학우들이 모인 반이 새로 개설됐어요. 다들 실력도 좋고 배울 점이 많더라고요. 무척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한 과정의 등록금을 다 내기 어려울 정도로 상황이 안 좋은 학우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작년에 장애인재단에 3,000만 원을 기부했고, 보육원에도 매년 기부 중인데 제 주변의 어려운 학우를 돌보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미란 주임교수님께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그 학우가 졸업할 때까지 대신 등록금을 납부하고 싶다는 의견을 전달했어요. 그런데 그 학우가 졸업한 이후에도 환경이 어려운 학생들을 도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김미란 주임 교수님 덕분에 앞으로도 이 학우를 비롯해 환경이 어려운 학우들을 도울 수 있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Q. 외부에도 많이 기부하시고 여러 봉사활동을 하신다고 들었는데, 혹시 처음 기부를 시작하신 계기나 동기가 있을까요? A. 사정이 어려워, 고시원에서 7년 정도 홀로 공부를 해야 하는 시기가 있었어요. 그 당시에는 한 달에 40만 원을 벌어서 34만 원은 월세로 냈어요. 나머지 돈으로 생활을 해야 했는데, 밥과 고추장으로만 끼니를 때우면서 자존감이 많이 무너졌어요. 그래서 의도가 좋지는 않지만 나보다 환경이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서 자존감을 회복하려고 했어요. 나에게는 없어도 한 번 굶으면 그만인 만 원이 꼭 필요한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에게 나누던 게 기부의 시작이었어요. 그게 점차 좋은 마음으로 바뀌었죠. 생활에 여유가 생기고 나서는 보육원 봉사를 다니기 시작했어요. 버는 돈이 늘어나고부터는 돈에 끌려가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으로 버는 돈의 일부를, 점차 비율을 늘려가면서 꾸준히 기부하고 있어요. 7~8년 전부터 봉사를 다녔던 보육원은, 지금은 바빠서 직접 가지는 못해도 공사비 등 계속 필요한 지원을 하고 있어요. 또 내년쯤 캐릭터 환자복을 만들어 소아병동 그리고 캄보디아 등 해외에도 보낼 계획을 하고 있어요. 기회가 되어 병원에 가보니 소아암으로 고생하는 어린 환자들이 환자복 입는 것을 많이 꺼리더라고요. Q. 나눔을 생활화하시는 만큼, 기부나 나눔에 대한 특별한 가치관이 있으실 것 같은데요. 이에 관해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지금은 제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겼어요. 학원도 운영 중이고 사업체도 두 개 정도 되니까요. 그래서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일 년에 몇 번 상자를 주워요. 폐지를 줍는 분들에게 리어카를 빌려 하루를 보내고, 그렇게 번 돈으로만 하루를 보내곤 해요. 제대로 먹을 돈도 벌지 못하는 경우가 수두룩해요. 그래도 이런 노력을 하지 않으면 어려웠던 시기가 금방 잊혀요. 또 박스를 직접 주워봐야 그분들이 얼마나 고생하시는지 알게 되니까요. 가치관이라고 거창하게 말할 것은 없지만, 왜 살아가는지에 관한 생각은 요즘 들어 종종 하는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하기에 사람들은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지식이든 진리든 깨달음을 주고받고, 즐거움을 찾기 위해 사는 것 같아요.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지셔서 병원에 가셨을 때, 사람 한 명을 살리는 비용이 죽이는 비용보다 훨씬 싸다는 걸 알았어요. 인터넷에 흔히 누구를 살인 청부하는 비용이 얼마라고 떠돌곤 하잖아요. 저희는 죽이는 비용보다 살리는 비용이 훨씬 싼, 정말 좋은 세상에 사는 거죠. 그럼 저는 증오를 품는 것보다, 그만큼의 에너지와 금액으로 사람을 살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생각이 저를 이루고 있는 것 같아요. 또 제 쾌락이 되는 것 같고요. Q. 혹시 앞으로의 계획이나 포부가 있으실까요? 앞서 말했듯 저는 사업체를 여러 개 가지고 있지만, 다 한 가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직원들한테도 항상 그렇게 말하곤 해요. 해외에 간호학교를 세우기 위한 목적으로 이런 일들을 하는 것이라고요. 세브란스 병원도 구한말에 선교사가 간호학교를 세운 게 시작이잖아요. 저도 간호학교를 세우는 게 목표예요. 제가 사회공헌활동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가끔은 하면서도 이 일을 왜 하고 있는지 고찰하게 될 때가 있어요. 사람의 본성에 따라서, 희열과 쾌락을 느끼는 행동이 다 다른 것 같아요. 저는 어릴 때부터 만화를 보든, 영화를 보든 누군가를 돕는 장면을 볼 때 벅찬 감정을 느꼈어요. 제 인생의 쾌락은 누군가를 돕는 데 있는 것 같다는 깨달음을 얻고, 남을 돕는 데 인생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간호학교를 설립하고 싶다는 것도 그런 생각의 연장선이에요. 사람은 다 한 번 살고, 한 번 죽는 거잖아요. 간호학교 설립을 통해 저의 정신이나 나눔의 마음 같은 것들을 후세대에까지 남기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요. 또 고시원에서 7년 정도 실용음악, 해부학, 역사 등 여러 분야의 공부를 하면서 제 나름대로 많은 깨달음을 얻었어요. 특히 제가 연축성 발성장애 환자들을 많이 만나고, 그분들이 말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어요. 돈을 받는 것도 아닌데, 제가 의사는 아니니까 치료라는 말을 쓸 수도 없고, 사기꾼 취급받는 일도 잦아서 콘서바토리에서 학위를 딴 후 언어치료 전공으로 대학원에 진학해서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있어요. 베이징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매스 스타트 부문 은메달리스트 정재원 학우를 만나다! 작성자 김*현 조회수 385 등록일 2022.06.02 첨부파일 0 명지대 스포츠학부 정재원 학우가 2022년 베이징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매스스타트 부문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팀추월 부문 은메달에 이은 두 번째 올림픽 메달이다. 한국 빙속 사상 최연소 올림픽 메달리스트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는 정재원 학우는 올림픽을 비롯한 각종 국내 및 세계 대회에서 메달을 휩쓴 바 있다. 최근에는 국내 최대 대회인 동계체전에서 4관왕을 달성해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되기도 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경기 운영능력과 폭발적인 돌파력을 바탕으로 2회 연속 올림픽 메달을 거머쥔 정재원 학우를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Q. 이번 2022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스피드스케이팅 매스스타트 부문에서 은메달을 획득하셨는데 독자분들을 위해 소감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올림픽이 워낙 큰 무대이다 보니 참가할 때마다 감동이 큰 것 같아요. 베이징 올림픽은 지난 평창 올림픽에 이어 저의 두 번째 올림픽 무대였고, 두 번째 올림픽 메달을 획득한 무대였어요. 그런데 두 번째라고 해서 감동이 덜한 건 아니더라고요. 오히려 또 한 번 좋은 성과를 낸 것 같아 가슴이 벅차고 뿌듯했어요. 다만 1등을 한 선수에게 0.07초 차이로 밀려 은메달을 획득했는데, 정말 근소한 차이였기 때문에 조금만 더 집중했으면 금메달 획득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Q. 처음 스피드스케이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고, 학우님이 생각하는 스피드스케이팅의 매력이 무엇인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저한테는 두 살 터울의 형이 있는데, 형도 스피드스케이팅 선수예요. 형이 먼저 스케이팅을 시작했고, 저도 형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스케이팅을 시작했어요. 원래 형제들끼리는 동생이 형을 따라 하고 싶어 하는 게 있거든요.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스피드스케이팅의 매력을 알게 됐어요. 얇은 스케이트 날 하나에 의지해서 코너링이나 그 외 여러 기술을 구사하는 게 굉장히 스릴 있잖아요. 그래서인지 저도 선수이지만 다른 선수들의 경기를 볼 때마다 덩달아 긴장되고 떨리더라고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이 있다는 게 스피드스케이팅만의 매력이 아닌가 싶어요. Q. 스피드스케이팅 분야에서 롤모델이라고 할 만한 선수가 있나요? A. 대표팀이 되기 전에는 롤모델이 있었어요. 특정한 선수가 있다기보다는 세계적으로 스케이트를 잘 타는 몇몇 선수들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그런데 대표팀으로 국제대회에 출전하려면 여러 선수의 경기를 지켜봐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롤모델의 개념이 사라졌어요. 세상에 스케이트를 잘 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거죠. 지금은 같이 스케이트를 타는 선수 가운데 저보다 잘 타고, 배울 점이 있는 선수들을 다 롤모델이라 생각하고, 잘 배워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됐어요. Q. 운동선수로서 번 아웃이나 슬럼프를 겪기도 할 것 같은데, 정신적 압박을 이겨내는 선수님만의 방법이 있을까요? A. 저 역시 슬럼프가 왔던 적이 있어요. 아무래도 스피드스케이팅이 기록경기이다 보니 시합에 나가면 저의 상태가 어떤지 저도 알 수 있고, 다른 사람들도 알 수 있잖아요. 정재원 선수가 슬럼프다 , 정재원 선수 상태가 안 좋다 는 주위의 반응이 제 귀에 들어오기도 해요. 그런데 결과에 대해서 피드백을 받는 것은 운동선수한테는 숙명 같은 것이거든요. 그래서 슬럼프가 왔을 당시에 주위의 부정적인 평가나 스스로 하는 생각을 떨쳐내려고 굉장히 애썼던 것 같아요. 저의 상태를 슬럼프라고 정의하고 좌절하기보다는, 그저 하던 대로 하려고 노력했죠. 해오던 것을 묵묵히 해나가다 보면 결국에는 좋은 결과가 돌아올 것이라 믿거든요. 그러니 자신을 믿고 일단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사진:연합뉴스Q. 운동을 하는 후배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아시안게임 선발전에 나간 적이 있어요. 2등을 한 선수까지 아시안게임 참가 자격이 주어지는데, 제가 아쉽게 3등을 해서 참가 자격을 얻지 못했어요. 지금의 제 마음가짐으로는 그런 것도 하나의 경험이라고 생각하면서 크게 의미 부여를 안 했을 것 같은데, 당시에는 어린 마음에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정신력이 완전히 무너져서 운동을 소홀히 하게 되었죠. 제 선수 생활의 첫 슬럼프였어요. 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후배들도 당장 눈앞에 있는 굵직한 시합에 일희일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당장의 성과도 중요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 더 큰 선수가 되어서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그러한 좌절의 경험 속에도 선수 생활에 도움이 될만한 지점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 그렇기에 눈앞의 결과에 연연하기보다는 모든 게 하나의 경험이라고 생각하면서 선수 생활을 해나갔으면 좋겠어요. Q. 이번에 명지대 신입생으로 복학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학생으로서 앞으로 계획이 있으실까요? A. 명지대학교에는 20학번으로 입학했는데, 당시 올림픽을 준비하고 있기도 했고, 개인적인 상황이 겹쳐서 학교를 오래 쉬었어요. 어쩌다 보니 올해 22살이 되었는데, 다시 복학하게 된 만큼 이번에는 제대로 된 대학 생활을 해보고 싶어요. 평범한 또래들처럼 친구를 사귀어서 같이 놀고, 미팅 같은 것도 하고요. 또, 친구들이랑 수업 마치고 학교 앞에서 술 한잔하는 것도 로망 중 하나예요. 사진:연합뉴스Q 선수로서 앞으로의 목표나 계획, 포부가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앞으로 올림픽을 세 번 더 나가고 싶어요. 그때쯤이면 제가 34살일 텐데, 현재 스피드스케이팅의 평균 연령을 고려했을 때 충분히 경쟁력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34살 혹은 그 이상이라도 몸이 받쳐줄 때까지 스케이트를 타고 싶어요. 무엇보다 지금까지 총 두 번의 올림픽을 나갔고, 두 번 다 메달을 획득했지만, 이러한 성과가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요. 두 번 다 준비도 잘했고, 운도 잘 따라준 덕에 메달을 획득할 수 있었지만, 그게 곧 올림픽에 출전할 때마다 메달을 획득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앞으로 있을 올림픽에서 다시금 시상대에 올라서는 게 저만의 목표예요. 학과의 발전을 위해 기부금 2천만 원을 쾌척한 김재순 교수님 작성자 김*현 조회수 637 등록일 2022.05.02 첨부파일 0 -교정을 떠나며 물리학과를 위해 발전기금을 쾌척하다!-김재순 물리학과 교수가 정년을 맞아 학과의 발전을 위해 2천만 원을 기부했다. 김재순 교수는 서울대학교 물리교육과 졸업 후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고려대학교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중등 과학 교사와 한국광학기술개발 연구소장, KAIST 객원 연구원, 미국 아리조나 대학의 광학센터 연구원,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연구교수를 지내며 국내 주요 산업체 및 연구소와 교육기관에서 핵심적 역할을 담당해왔다. 다수의 국책연구와 기업체 수탁 연구에 참여하여 국내 및 국제 특허를 출원하는 등 연구개발에 힘써왔을 뿐 아니라, 명지대학교에서 12년간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 힘써온 김재순 교수를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Q.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인터뷰를 읽을 독자분들에게 간단한 소개와 함께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2009년도에 명지대학교에 부임한 김재순입니다. 원래는 교수가 될 생각이 없었어요. 군 제대 후에 중등 과학 교원으로 일을 하다가 방위산업체인 한국광학기술개발로 이직해서 10년 가까이 일했지요. 그 기간에 고려대에서 물리학과 박사과정도 밟고, 회사도 하나 차렸어요. 그런데 이 분야에선 석 ‧ 박사 졸업 후에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게 보통이니까 괜히 아쉬움이 남더라고요. 자연과학 분야의 선진국에서 한번 살아보자는 생각으로 식구들과 함께 미국으로 갔어요. 거기서 세계 최상위 광학연구소인 OCS의 스텝으로 일했습니다. 그런데 서울대에서 연락이 와 교수직을 제안했어요. 제 조건에 모두 맞춰주겠다고 하기에 곧장 미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들어왔어요. 그렇지 않아도 한국에서 회사를 창업할 생각이었거든요. 그런데 교직 생활이 생각보다 길어지면서 회사를 만들지 못했고, 서울대 교수직을 그만두는 시점에 맞추어 명지대에서 연락이 왔어요. 또다시 교수직을 제안받았죠. 그때 이후로 12년 넘게 명지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Q. 교수님께서는 물리학과의 발전을 위해 발전기금 2천만 원을 기부해주셨는데요. 기부하시게 된 자세한 배경이나 동기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A. 특별한 동기가 있던 것은 아닙니다. 교수님들이 일정 금액을 기부하는 게 우리 물리학과만의 전통이거든요. 학과 30주년 행사 때 교수님들끼리 월급에서 천만 원가량을 기부하기로 약정하기도 했어요. 그런 식으로 학과를 위해 발전기금을 쭉 내왔고, 그게 2천만 원이라는 금액이 된 것이지요. 기부금은 물리학과에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두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학생들이 엠티에서 놀 때 게임 부상으로 사용한다든지, 학생들의 편의를 위해 자유롭게 사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Q. 학과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실 것 같은데, 물리학과에 대한 소개나 자랑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A. 사실 물리학을 자랑하는 게 힘들어요. 요즘은 머리가 좋으면 다들 의대에 가려고 하지 물리학을 전공하려고 하지 않거든요. 물리는 자연과학의 근본이고, 어떤 분야에서든 훌륭한 선수가 나오려면 기초운동, 즉 기본을 익혀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기초학문을 공부하려는 사람들이 없어요. 저는 인류 발전의 근거가 과거에 대한 해석과 그것을 보존하고 메모리화하려는 시도에 있다고 생각해요. 인류의 유전자에 계통 발생의 히스토리가 간직되어 있어서 인류라는 종이 지속될 수 있는 것이지요. 이러한 관점에서 물리학은 요즘의 흐름과 거리가 멀어요. 물리학을 제대로 공부하려면 기원전에서부터 그 히스토리를 쭉 훑어야 하는데, 내용이 워낙 방대하다 보니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돼요. 물리학 학문의 결과가 컴퓨터 사이언스인데, 컴퓨터는 그냥 사용하면 되잖아요. 그런데 물리를 하는 사람은 컴퓨터의 내부를 알고 쓰는 사람이에요. 왜? 라는 질문을 품고 그 원리를 하나하나 헤아려야 하다 보니, 요즘 주목받는 익스트림한 기술이랑은 거리가 멉니다. 그런데 인류가 진정한 발전을 하려면 물리, 즉 자연과학의 베이스가 갖춰져 있어야 해요. 그게 없으면 일정 정도에 이르면 더는 발전을 못 합니다. 물론 아날로그 시대의 장인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기가 힘든 시대예요. 그런데도 누군가는 앞으로 나아가려고만 할 게 아니라 과거를 끊임없이 상기하고 보존해야 해요. 저는 그게 물리학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자연과학을 국가적으로 보존해야 하는 시기가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Q. 교수님께서 앞으로의 포부나 계획이 있으신가요?A. 정년퇴임을 한다고 해서 썰물이 지듯이 완전히 끝났다는 느낌은 없습니다. 명지대학교에서 보낸 시간이 비교적 짧기도 하고, 강의하고 싶은 의지와 능력이 있는데도 나이가 차서 학교를 떠나야 한다는 것이 아쉽기도 해요. 퇴임 후에는 예전에 동업하던 분과 협력해서 새로운 것에 도전해볼까 해요. 원래는 회사를 새로 창업하고 싶었는데, 이 나이에 회사를 새로 만들기는 힘들 것 같아요. 아무래도 회사가 어느 정도 동력을 가지고 자체적으로 운영이 되려면 그만한 집중력과 에너지가 필요하니까요. 기존에 만들었던 회사에 집중하게 될 것 같습니다. Q. 마지막으로, 명지대학교 학생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으시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A. 수업 시간에도 가끔 하는 이야기인데, 누구나 삶을 살아가다 보면 단기적이거나 장기적인 목표가 생깁니다. 인생은 기본적으로 모호한 것이지만, 특정한 목표가 있기에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거예요. 설령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희망일지라도, 그 희망이 사람을 살리는 것이고요. 그래서 목표라는 것을 등대라고 한다면 우리는 늘 어떤 등대를 보고 가는 거예요. 누가 한 말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삶이라는 건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있고, 우리는 밝혀진 불빛만을 보고 간다고 해요. 근데 결국에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 등대는 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내 손끝에 있다는 거예요. 내가 보고 따라가던 불빛이 사실은 등대의 불이 아니라, 내 손에 들린 호롱불인 거죠. 다시 말해, 내 인생의 키는 내가 쥐고 있는 것이고, 그렇기에 자신의 삶에 변명을 할 필요도, 무책임할 수도 없다는 거예요. 학생들이 그걸 꼭 명심해줬으면 좋겠어요. 학교에 대한 자부심을 바탕으로 명지대학교 굿즈를 제작한 박모세, 홍창훈 학우를 만나다! 작성자 김*현 조회수 850 등록일 2022.04.01 첨부파일 0 학교에 대한 자부심을 바탕으로 명지대학교 굿즈를 제작한 박모세, 홍창훈 학우를 만나다! 학교에 대한 자부심을 바탕으로 모자 굿즈를 제작한 학생들이 있다. 중어중문학과 17학번 박모세, 미술사학과 17학번 홍창훈 학우다. capzzang 프로젝트를 진행한 두 사람은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체제 때문에 학우들이 서로 교류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구성원들이 학교에 대한 소속감과 연대감을 높일 방법을 고민했다. 두 학우는 직접 만든 굿즈를 판매하고, 수익금은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에 명지대학교캡짱 이름으로 기부하기도 했다. 이번 프로젝트가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학우들에게 위로와 용기가 되었으면 한다는 두 학우를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Q. 안녕하세요, 인터뷰를 읽을 독자분들을 위해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박모세: 안녕하세요, 저는 중어중문학과 17학번 박모세입니다. 새내기였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졸업을 앞둔 4학년이 됐네요. 만화가족이라는 웹툰 제작사에서 PD로 근무 중인 신입사원이기도 합니다. 홍창훈: 안녕하세요. 미술사학과 17학번 홍창훈입니다. 마찬가지로 졸업을 앞둔 4학년이며, 학업을 병행하며 졸업 준비에 힘쓰고 있습니다. Q. capzzang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학교의 상징과 역사가 담긴 모자를 제작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된 계기나, 프로젝트를 통해 달성하고자 했던 목표에 대해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박모세: 학교에 돌아오니, 팬데믹 때문에 전면 비대면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입대 전과는 상황이 달라서 학교에 다닌다는 실감이 나지 않았어요. 동아리나 축제 등 친구를 사귈 수 있는 행사가 진행되기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프로젝트를 통해 다른 학우들과 연결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일을 진행하면서는, 프로젝트를 통해 명지대학교에 대한 학우들의 인식에 긍정적인 변화가 생기기를 바라게 됐습니다.홍창훈: 대학과 군대 생활, 그리고 저의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좋은 집단이 되기 위해서는 집단에 소속된 개인의 유대감과 소속감, 믿음 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 요소들이 만들어내는 복합적인 감정은 집단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사람들을 끄는 매력 포인트가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저는 지금껏 여러 단체에서 활동했고, 그 과정에서 얻은 소속감을 통해 좋은 추억과 경험, 또 성과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현재 코로나19 때문에 캠퍼스 생활이 어려운 후배들은 학교에 대해 애틋함이나 소속감을 얻기가 힘들 것 같았어요. 프로젝트를 통해 이런 부분을 채워줄 수 있을 것 같아 시작하게 됐습니다. Q. 굿즈 물품 선정부터, 역할분담까지 전반적인 프로젝트 과정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궁금합니다. 박모세: 실용성이 있는 굿즈를 만들고 싶었는데, 모자를 쓰고 비대면 수업을 듣는 학우들이 많은 것을 보고 모자라는 아이템을 선정하게 됐습니다. 모자의 앞뒷면을 학우들의 미래와 과거로 정하고, 학교의 로고와 헤리티지 등의 의미를 매치해 디자인을 결정했어요.역할분담은 서로의 복수전공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저는 디지털미디어학과를 복수전공 중이고 창훈 학우는 국제통상학과를 복수전공 중이라, 제가 홍보와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고 창훈 학우는 제작, 판매, 유통을 담당했어요. 하는 일이 전공과 완벽하게 일치하지는 않지만 잘할 수 있는 영역이 명확했던 것 같습니다. 또 이 프로젝트는 창훈 학우가 모아둔 200만 원이 있어서 진행할 수 있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예산에 맞춰서 적합한 업체를 선정하고,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으면서 학우들이 구매하기에 부담이 없는 가격으로 책정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제작비용으로는 총 1,906,200원이 사용됐고, 수익금은 294,860원이었어요. 프로젝트의 목표가 좋은 추억을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에, 수익금은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 에 명지대학교캡짱 이름으로 기부했습니다. 홍창훈: 모자를 만들기로 한 이후, 약 2개월간 쉼 없이 달렸던 기억이 납니다. 디자인, 색상, 원단에 대한 고민부터 시작했죠. 패션 쪽으로 감각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잡지, 인터넷 쇼핑몰을 찾아보고 시장도 직접 다녔어요. 디자인에 대한 큰 틀이 잡힌 이후에는 모자 제작 공장에 전화를 돌리며, 저희 모자에 맞는 최적의 업체를 찾기 위해 발품을 팔고, 직접 방문해 샘플을 확인했어요. 성수동 일대를 돌며 제품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학우들과의 소통을 통해 최종적으로 디자인을 수정하고 제작까지 진행했습니다.모자 제작이 마무리된 후에는 함께 제공되는 행택, 구매인증서, 더스트백, 감사 편지 등을 제작하기 위해 다시 다양한 업체들과 만나는 시간을 가졌어요. 행택 같은 경우에는 예전에 명지대학교 졸업인형(띵띵이)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학우님께서 디자인적으로 큰 도움을 주셨고, 그 외 제품들도 학교에 대한 소속감이나 애교심을 고취할 수 있는 방향으로 만들기 위해 힘썼습니다. 이후 네이버 스토어 계정을 만들어서 판매하고 우체국을 통해 배송을 마쳤습니다. Q. 프로젝트 진행 중 어려웠던 과정이나 유독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었다면 무엇이었을까요? 박모세 : 소통에 관한 게 보람차기도 했고 아쉽기도 했던 것 같아요. 많은 학우가 댓글과 DM으로 응원해주셨는데, 그게 큰 힘이 됐습니다. 아직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아쉬웠던 점에 대해 말하자면, 한 학우가 학교 상표권 사용, 수익금 발생 여부, 수익금의 사용 방법 등의 투명성에 대해 지적해주신 적이 있습니다. 자세하게 설명하려고 노력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충분치 않은 설명이었던 것 같아요.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게 처음이라 미숙했던 부분이 많았어요. 홍창훈: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주문 개시 첫날이에요. 하루 만에 약 80건의 주문이 쏟아졌어요. 이튿날 발송하기 위해 저희 집 거실에 모여 부모님, 모세 학우와 함께 늦은 밤까지 제품을 포장했죠. 그때는 많은 제품을 실수 없이 포장한 게 맞는지 확인하면서 너무 큰 일을 벌인 게 아닌가 후회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참 재밌고 뿌듯한 경험인 것 같습니다. Q. 수익금 일부를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에 기부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많은 기부처 중 소아암 환자들을 위한 곳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으실까요?박모세, 홍창훈 : 저희가 프로젝트를 기획한 것이 1월 말이었고, 판매를 시작해 손익분기점을 넘은 시기가 5월 초였습니다. 학우들이 동참해주셔서 수익금이 생긴 뜻깊은 시점과 어린이날이 비슷한 시기였어요. 어린이들을 위해 수익금을 기부하면 큰 의미가 생길 것 같았습니다. 검색하다 해당 재단을 발견했고, 소아암이 있는 어린이들을 위해 기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Q.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느낀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박모세, 홍창훈 : 요새 명지대학교와 관련된 크고 작은 이슈들이 많아서 학교 안팎이 시끄러웠던 것 같습니다. 많은 학우가 다양한 고민으로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계실 것 같습니다. 힘든 시기일 때마다 학교에서 쌓았던 추억을 생각하는데,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더 학교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됐어요. 학우들과 소통하면서 애교심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하고 많은 위로와 응원을 받았습니다.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 같아요. 저희는 목표로 하던 바를 모두 이루었는데, 학우들에게도 이 프로젝트가 그런 위로와 용기가 되었기를 바랍니다.Q. 다음 프로젝트가 예정되어 있는지, 학우들의 향후 계획은 어떤지 궁금합니다.박모세 : capzzang 프로젝트 진행 중에도 똑같은 질문을 주셨던 학우가 있었어요. 프로젝트 결과를 보고 결정해야겠다고 답장을 드렸는데, 아무래도 곧 졸업해서 새로운 프로젝트는 어려울 것 같아요. 후배 학우들께서 프로젝트 진행하시면 구매로 동참하겠습니다. 또 저는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지만, 감사하게도 취업이라는 큰 산을 넘어 웹툰 PD로 일하고 있습니다. 독자들이 사랑하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이 보고 배워야 할 것 같아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려고 합니다.홍창훈 : 저학년이었다면 아마 후드티나, 티셔츠, 공책 같은 굿즈에도 다양하게 도전해봤을 것 같아요. 굿즈를 제작하는 게 재미있고, 관련 경험도 많이 할 수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됐거든요. 이 글을 보시는 후배 학우들에게 꼭 프로젝트를 진행해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또, 저는 대학 생활 내내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중 어떤 것을 좇아야 할지 고민했는데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저에게는 잘 맞는 것 같다는 확신을 얻었어요. 그래서 평소 관심이 있던 분야에 취업할 수 있도록 준비하려고 합니다. 명지에서 13년을 보낸 참 명지인 노녕 학우를 만나다 작성자 김*현 조회수 1364 등록일 2022.02.28 첨부파일 0 명지대학교에서 햇수로 13년을 보낸 참 명지인이 있다. 2022년 2월, 박사 과정을 마치고 졸업식을 치른 노녕(鲁宁) 학우다. 노녕 학우는 산동성 제남시 출신으로, 명지대학교 건축대학 진학을 위해 2009년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노녕 학우는 한국어교육센터에 입소한 것을 시작으로 명지대학교에서 학부, 석사, 박사 과정을 보내며 13년간 명지대학교에 몸담았다. 먼 이국 땅에서 건축에 대한 열정으로 공부에 힘쓴 노녕 학우를 만나 다채로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Q. 안녕하세요, 노녕 학우. 인터뷰를 읽을 독자 분들을 위해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곧 건축대학원을 졸업하는 노녕이라고 합니다. 2009년 한국에 온 이래로 햇수로 13년 동안 명지대에서 생활했어요. 2009년 한국어교육센터에 입교했고, 다음 해 건축대학에 진학했어요. 학부 졸업 후 명지대학교에서 바로 석사와 박사 과정을 밟았습니다. 2015년 석사 진학한 이후, 지금까지 국제교류처 외국인 상담 센터에서 근로학생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Q. 노녕 학우께서 명지대학교, 혹은 한국을 선택하신 계기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는 처음부터 명지대학교 건축대학에 진학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한국 유학을 결정했어요. 중국에서도 명지대학교 건축학과가 유명합니다. 중국에 있을 때도 건축학을 전공했는데, 교수님께서 명지대학교를 추천해 주셨어요. 한국어가 서툴러 먼저 한국어 교육센터에서 공부했고, 한국어능력시험을 5급까지 딴 다음 건축학과에 입학했습니다. Q. 국제교류처에서 오랫동안 근로학생으로 근무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떤 일들을 하셨는지 소개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A. 저는 2015년부터 자연캠퍼스 외국인 지원 사무실에서 근로학생으로 일했어요. 어우라미 학생들과 교내 국제행사를 지원하고, 번역과 통역 업무도 맡았습니다. 외국인 등록증을 함께 만드는 등, 한국어가 서툰 학우들이 한국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주로 했어요.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는 학우들을 인솔해 PCR 검사를 받으러 가기도 했고요. 어우라미 학생들과 함께 한국에 처음 입국하는 학생들을 마중하러 공항에 갔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제가 국제교류처 선생님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은 만큼, 저와 같은 유학생 친구들을 도울 수 있어 보람차게 일하고 있습니다. Q. 석사 논문과 박사 논문 모두 한국어로 작성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A. 한국어로 논문을 쓴다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석사 지도 교수님이셨던 이상현 교수님이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석사 논문의 주제는 네트워크 분석에 기반해 중국과 한국 궁궐의 내부 공간을 비교∙분석하는 것이었어요. 네트워크 분석이란, 궁궐 도면을 네트워크로 작성해 공간들의 통합도를 계산하는 방식을 말해요. 자금성, 경복궁, 창덕궁의 사례를 들어 공통점과 차이점을 정량적으로 분석했습니다. 박사 논문을 쓸 때는, 네트워크 분석을 통해 청나라 시대의 북경 공간의 구조를 연구했습니다. 청나라 시대 북경의 모습을 보면 황성이 가운데 있어요. 황실 안전 때문에 일반 사람들은 통행할 수가 없었죠. 북경의 도시 구성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이런 점들을 고려해 북경 도시와 도로, 공간 배치에 대해 분석하는 작업이었습니다. Q. 노녕 학우께서 생각하는 좋은 건축이란 무엇일까요? A.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개방 공간과 비밀 공간입니다. 제 건물을 설계할 때도 개방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과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있는 공간을 어떻게 배치할지를 가장 중점으로 두려고 해요. 르꼬르뷔지에(Le Corbusier)의 빌라 사보아(Villa Savoye)라는 건축물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들을 잘 담아낸 건물이에요. 건물의 입구와 내부가 전면 유리로 구성되어 있어 자연광을 즐길 수 있고, 또 건물 내부에서도 야외 공간을 볼 수 있어 개방감이 느껴집니다. 자연캠퍼스에서 제일 좋아하는 건물은 창조예술관과 도서관이에요. 창조예술관도 유리로 된 벽이 있어 채광이 좋고 개방감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Q.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 무엇이었을까요? A. 처음 제가 명지대학교에 입학했던 2010년 무렵에는, 자연캠퍼스에 외국인 지원 사무실이 없었어요. 현재는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어우라미 도 인원이 많지 않았고요. 도움을 구할 곳이 많지 않아서 적응하기 쉽지 않았죠. 자연캠퍼스에 외국인 지원 사무실이 생긴 이후로는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국제교류처 팀장님께도 많은 도움 받아서, 이 지면을 통해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양복을 입고 가라고도 조언해 주셨어요. 또 산동에는 매운 음식이 많지 않아서, 한국 음식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어요. 지금도 갈비탕이나 돼지국밥처럼 맵지 않은 음식 위주로 먹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 혹은 포부를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일단 졸업식을 마치면 바로 고향으로 돌아갈 예정이에요. 코로나19 때문에 3년이나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어요. 지금 생각하는 인생의 가장 큰 목표는 고향에 있는 산동건축대학교의 교수가 되는 거예요. 중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강사, 조교수, 부교수 등의 과정을 거쳐야 교수가 될 수 있는데,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볼 생각입니다. LG이노텍 유튜브 숏폼 광고 공모전 등 다수 공모전에서 빛나는 성과를 거둔 김서현 학우를 작성자 김*현 조회수 1197 등록일 2022.01.27 첨부파일 0 디지털미디어학과 김서현(17) 학우가 LG이노텍 유튜브 숏폼 광고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김서현 학우는 이미 Dr.G패러디 콘텐츠 공모전, 알라딘 브랜드 전략 아이디어 경쟁 PT, LOHB s 전략 제안 경쟁 PT, 제4회 명지대학교 사회과학대학 학술제, 명지대학교 광고 공모전 등에서 우수한 성과를 거두며 교내외에 이름을 알렸고, 홍보기자단과 홍보대사 새빛모리로 활동하며 학교 홍보에 이바지하기도 했다. 사회로 나가 명지대학교를 빛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김서현 학우를 만나 다채로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Q. 안녕하세요, 김서현 학우. 자기소개와 함께, 다수 공모전에서 수상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이야기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안녕하세요. 명지대학교 디지털미디어학과 17학번 김서현입니다. 명지대학교 홍보대사 새빛모리 24기, 홍보기자단 16기로 활동한 경력이 있습니다. 좋은 팀원들을 만났던 게 수상의 가장 큰 비결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개인으로 공모전에 참여했던 적은 한 번도 없어요. 팀원들과 의견을 교류하고 서로의 장점을 배웠어요. 갈등이 생긴 적도 있지만, 좋은 결과물을 제출하는 게 목적이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에 좋은 방향으로 조율할 수 있었어요. 또 진심으로 배우려는 마음으로 공모전에서 임했습니다. 공모전에서 수상해 이력을 남기는 것도 좋지만,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내기 위한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노력하고 고생하며 배운 게 다 자산이 된다고 믿습니다. Q. 가장 기억에 남는 공모전은 무엇인지 혹은 준비 과정 중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었다면 무엇인지 들어볼 수 있을까요? 촬영했던 모든 공모전이 기억에 남지만, LG이노텍 유튜브 숏폼 광고 공모전을 준비할 때 연기자로 촬영에 참여했다가 체력 고갈로 쓰러질 뻔했던 경험이 가장 강렬했어요. 올해 홍보기자단 학우들과 함께 참가한 명지대학교 광고 공모전도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구체화가 된 아이디어가 두 가지 방향이었어요. 둘 다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작품을 두 개 제출했어요. 그중 하나가 최우수상이라는 성과를 거뒀죠. 촬영을 위해 어린이대공원에 함께 갔던 것도 추억으로 남아 있어요. Q. 수상하신 공모전들을 살펴보면 광고‧홍보 쪽에 관심이 많으신 듯한데 앞으로의 진로도 이런 쪽으로 생각하고 계신지요? 예전부터 광고‧홍보 쪽에 관심이 많았지만, 제가 이 분야에 잘 맞는 사람이라는 확신을 하기가 어려웠어요. 경험을 위해 홍보대사 새빛모리와 홍보기자단에서 활동했어요. 제가 가장 처음 수상했던 MJU English Video Contest 도 새빛모리 선배와 함께 참여했던 거예요. 두 활동을 하면서 많은 경험을 했고, 사람 사이의 교류에 대해서도 배웠습니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서울경인지역 대학생연합 광고 동아리 애드파워 에서 회장직도 맡았고요. 지금은 막연하게 광고 기획자라는 직무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광고주와 제작진 사이에서 모든 것을 총괄하는 직무인데, 인턴으로 일하면서 실무 경험을 쌓은 후 도전할 생각이에요. Q. 서현 학생이 생각하는 좋은 광고, 좋은 홍보란 무엇일까요? 기억에 남는 광고가 가장 좋은 광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러 미디어를 통해 엄청나게 많은 광고가 쏟아지고 있어요. 구독 프로그램에 가입해 광고를 피하는 분들도 많죠. 그 사이에서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으면서 기억에 남는 광고를 만들기란 참 어려운 일이에요. 임팩트도 있어야 하고, 전달하는 메시지도 있어야 하니까요. 모든 요소를 다 갖춘 광고가 사람들의 마음에 오래 남는 것 같아요. 기억에 남아야 프로모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지면, SNS, 영상 등 매체를 가리지 않고, 강렬하고 좋은 광고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봐야 할 것 같아요. Q. 공모전을 준비하는 학우들에게 도움이 될 조언이나 팁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일단 많이 도전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저도 지금 수상한 공모전의 몇 배나 많은 공모전에서 수상하지 못했어요.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낙심하지 않고 도전을 이어간다면 좋은 결과가 나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많은 선배들에게 들었던 조언인데, 공모전 하나에 출전할 때마다 작은 목표를 세우면 좋아요. 이 공모전에서는 지금까지 안 해봤던 방식을 사용해 작품을 완성하겠다거나, 하는 목표를 세우면 발전의 수단으로 공모전을 활용할 수 있어요. 또 회의 시간이 너무 긴 건 효율적이지 못한 것 같아요. 저는 고정 회의시간을 정해두고, 과제를 미리 부여한 다음 서로 프레젠테이션하는 형식으로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미리 생각한 후 만나서 회의 때는 서로 조율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게 여러 아이디어도 나오고 좋더라고요. 하나가 더 있다면, 학교 장학금 제도를 적극 활용하라는 거예요. 100대 기업에서 주최하는 공모전에서 수상하시면 장학금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한 번 찾아보세요. Q. 앞으로의 계획이나 포부가 있으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제 막학기를 마무리하고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어요. 일단 원하는 직무에서 인턴으로 일할 생각이고요, 실무에 필요한 툴도 더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다듬어나갈 예정이에요.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 학교 동문으로서 학교를 빛낼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제40회 CFP 대학 부문 수석을 차지한 경영대학 조창범 학우를 만나다! 작성자 김*현 조회수 1104 등록일 2022.01.27 첨부파일 0 경영학과 17학번 조창범 학우가 2021년 제40회 CFP 대학 부분 수석을 차지했다. CFP시험은 FPSB(Financial Planning Standards Board)에서 주관하는 국제공인재무설계사 자격 시험이다. 조창범 학우는 학기 중에도 하루에 일곱 시간씩 체계적으로 공부한 끝에 수석이라는 값진 성과를 이뤄냈다. 앞으로 금융권에 취업해 명지대학교를 빛내고 싶다는 포부를 가진 조창범 학우를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Q. 안녕하세요, 조창범 학우. CFP자격 인증시험 대학 부문 수석을 축하드립니다. 인터뷰를 읽을 독자들을 위해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경영학과 17학번 조창범입니다. 이제 4학년으로 진학합니다. 최근 CFP자격 인증시험에 합격했고요. 2021년 7월부터 경영학과 재무학회 밸류 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Q. CFP시험에 대한 소개와 함께 수석으로 합격한 소감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CFP는 Certified Financial Planner의 약자로, 국제공인재무설계사 시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FPSB(Financial Planning Standards Board)에서 주관하는 시험이고, AFPK(한국재무설계사)를 인증한 후에 교육 과정을 수료하면 응시할 자격이 주어집니다. AFPK는 PB(Private Banking)업무나 WM(Wealth Management)업무, 즉 은행이나 증권사 같은 개인 금융에 사용되는 자격증입니다. 모의고사 문제를 풀었을 때 점수가 안정권이라 합격에는 무리가 없겠다고 예상했었는데, 수석을 할 거라고는 기대하지 못해서 기쁜 마음이 가장 컸어요. 또 취업에 대해 생각하면 조금 막막했는데,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Q. 학기 중에 CFP시험을 치르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시험 준비에는 얼마나 시간을 들이셨는지, 특별한 공부 방법이 있으신지 구체적으로 여쭙고 싶습니다. 공부할 때 열품타 라는 어플을 유용하게 사용했습니다. 어플을 켜놓으면 얼마나 공부했는지 시간을 기록할 수도 있고, 휴대폰으로 다른 어플을 보지 못해서 집중에 도움이 돼요. 시험 준비에 매진한 기간은 세 달 반 정도였는데, 공부에 집중한 시간을 다 세어보니 600시간이 되더라고요. 학기 시작 전에는 하루에 여덟 시간, 학기 중에는 하루에 일곱 시간 정도 공부했고 일주일에 하루는 휴식을 취했습니다. CFP시험은 공부할 분량이 방대한 편이에요. 400페이지가 넘는 기본서가 일곱 권 있는데, 저는 기본서를 중심으로 공부했고 인터넷 강의도 활용했습니다. 문제집도 많이 풀었고요. 무엇보다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저는 4학년 진학하면 취업 준비로 바쁠 것 같아, 이번에 꼭 합격해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공부에 힘썼거든요. 하루에 일곱 시간은 공부에 열중해야겠다고 다짐했고, 그걸 지켰습니다. Q. AFPK와 CFP 둘 다 금융권 취업에 유리한 자격증으로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진로 방향도 금융권으로 생각하고 계신지요? 2학년 때, 재무 과목에 큰 흥미를 느꼈어요. 그쪽으로 공부를 더 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금융권 취업을 결심했습니다. 사람 상대하는 일을 좋아해서 개인금융에 꿈을 가지고 있었는데, AFPK 자격이 있으면 은행이나 증권사에 취업에 유리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AFPK 시험 준비가 재미있었기 때문에 다음 시험인 CFP시험도 준비하게 됐습니다. CFP자격도 개인금융권 취업 시에 우대 받을 수 있어요. 가산점을 주는 곳인 농협은행이나 기업은행은 인턴 공고가 뜨면 지원을 해볼 생각입니다. Q. 수석 합격자로서 CFP자격 시험을 준비하는 학우들에게 도움이 될 조언이나 팁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CFP 시험은 지엽적으로 나오는 편이기 때문에 기본서 학습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기본서를 충분히 읽고 핵심 문제집으로 넘어가는 순서로 공부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저는 기본서를 열두 번 반복해서 공부했는데, 세 번 읽을 때까지는 정보가 정리되지 않아 어려웠습니다. 기본서에서 해설을 찾아 오답노트를 쓰는 식으로 공부했어요. 상심하지 말고 반복적으로 학습하기를 권합니다. 그런데 현재 4학년인 학우나, 시간적 여유가 없는 분에게는 CFP 시험을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워낙 양이 방대하고, 가산점을 주는 곳이 많지는 않거든요. NCS나 전공필기에 집중하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이나 포부가 있으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일단 2월 중에 투자자산운용사 시험이 있어서 관련 공부와 토익 공부를 병행할 예정이에요. 또 요새는 금융사에서도 디지털 관련 지식을 요구하시기 때문에, 경영정보 과목 공부에 힘쓸 생각입니다. 제가 있는 경영학과 재무학회 밸류 에서도 방학 중에 실증 분석 등 데이터를 다루는 시간을 갖기로 했어요. 학기 중에 빅데이터 관련 자격증을 취득할 생각도 있고요. 필요한 자격증을 위해 공부하는 한편, 인턴으로 일하며 실무 경험을 쌓아갈 생각입니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의 르네상스를 주도할 강규형 교수를 만나다 작성자 김*현 조회수 1502 등록일 2021.12.30 첨부파일 0 명지대학교 방목교육대학 강규형 교수가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신임 이사장에 임명됐다. 강규형 교수는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위원, KBS 교향악단 운영위원, 서울스프링실내악 축제 집행위원, 구미국제음악제 자문위원 등 문화예술 분야의 일을 30여년 간 해온 문화예술계의 베테랑이다. 강규형 교수는 2002년부터 명지대학교에 재직하며 후임 양성에 힘쓰는 한편, 《월간조선》에 姜圭炯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를 연재하는 등 음악평론가 및 수필가로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대통령 상대 KBS이사 해임무효소송 승소 후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신임 이사장으로서 인생의 새로운 막을 연 강규형 교수를 만나 다채로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Q. 안녕하세요.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인터뷰를 읽게 될 독자분들을 위해 자기소개와 지금까지의 발자취에 대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서울시립교향악단(이하 서울시향)의 이사장을 맡게 된 강규형입니다. 명지대학교에서는 20년 정도 음악 교양 과목을 맡아서 강의하고 있고요. 음악은 어렸을 때부터 좋아해서 음악학을 오래 공부했어요. 문화예술 분야에서 계속 활동했는데 특히 음악계에서 제일 열심히 일했던 것 같습니다. 2. 이번에 서울시향 이사장이 되셨는데, 독자분들을 위해 서울시립교향악단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그동안 정치‧행정 관련 제안을 받고서는 모두 고사했었는데, 국내 교향악단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사장직에 자원했습니다. 서울시향은 우리나라의 대표 교향악단입니다. 제가 KBS 교향악단 운영위원으로 있을 때까지만 해도 그곳이 대표 교향악단이었는데, 2004년 이후 드미트리 키타옌코 지휘자가 상임 지휘자를 그만두고 그 부재가 오래 이어져 쇠퇴했지요. 그러는 사이 서울시향이 정명훈 지휘자를 영입하며 한국 대표 자리로 올라섰어요. 정명훈 감독이 안 좋은 문제로 사퇴하고 세계적인 팬데믹이 이어져 서울시향도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재도약이 필요한 시점이에요. 서울시향에 저와 함께 손은경 대표이사(전 CJ부사장)가 취임했는데, 대표를 도와서 이사회를 꾸려 나갈 생각입니다. 첫 이사회를 진행해보니 다들 비슷한 문제의식과 목적을 공유하고 있어 다행이란 생각입니다. 3. 서울시향 이사장직의 직무에 대한 소개와 어떠한 방향으로 시향을 이끌어나갈 것인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이사회는 서울시향의 모든 일과 방향을 제의하고 논의하고 승인하는 자리예요. 여러 사람의 의견을 조율해야 하기 때문에 이사회를 주관하는 게 상당히 중요한 일입니다. 오케스트라로 예를 들면, 가장 중요한 자리가 지휘자이고 지휘자에 따라 오케스트라의 방향이 바뀝니다. 이사장과 이사회도 서울시향에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다행히 저와 이사들은 서울시향의 재도약이라는 측면에서 의견의 일치를 이루고 있어요. 목표는 서울시향이 계속 한국의 대표 교향악단의 자리를 지키면서, 동시에 세계 수준의 교향악단이 되는 것입니다. 서울시향의 잠재력은 이미 아시아 최상급이라고 생각해요. 서울시향의 도약을 위해 몇 년 후 음악감독을 어떤 분으로 모실 것인지 논의하고, 새로운 단원을 맞아 연주력을 높이는 등 정비에 힘을 쓸 예정입니다. 4.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위원 등 역사문명과 문화예술 분야에서 다양한 일들을 해오고 계신데, 이러한 일들을 해올 수 있던 원동력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음악계, 또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위원, KBS(한국방송공사) 이사 등으로 일하면서 문화와 음악은 제 삶에 항상 있었어요. 2008년에는 어느 호모 루덴스의 음악사랑 이야기 라는 제목으로 수필춘추 에서 신인상을 받고 등단하기도 했는데, 이 호모 루덴스 는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의 동명의 책으로 유명해진 개념이죠. 놀이하는 인간 이라는 뜻인데, 먹고 사는 게 충족되면 인간은 문화생활을 원한다는 거예요. 소송 전까지 저는 줄곧 이 호모 루덴스적인 삶을 살아왔습니다. 잠깐 그런 삶과 멀어졌다가 다시 음악계로 돌아오게 되어 정말 즐겁습니다. 5. 방목기초교육대학의 교수로 재직 중에 역사와 이해, 현대세계의 이해, 서양음악의 이해, 서양음악사, 음악 감상법 등 다양한 강의를 맡아오셨는데, 학생들을 가르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지점이 무엇인지, 또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시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A. 학생들과의 교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의 나쁜 부분을 보고 그러면 안 되겠다, 하고 배우는 것을 반면교사라고 하지요. 제가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수업에 소홀한 교수님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교수가 되면 안 되겠다고 다짐하고 지금껏 휴강 한번 한 적 없습니다. 등록금이 아깝지 않은, 등록금의 몇 배가 되는 수업을 제공해야겠다는 마음이었지요. 내 수업을 열심히 들은 학생들이 평생 잊지 못할 지식, 잊지 못할 얘기들을 얻고 그게 사회에 나가서도 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도 연락을 하는 제자가 있는데, 현재 구글 본사에서 전무를 맡고 있습니다. 명지대 출신은 아닌데, 미키 킴(김현유)이라는 제자예요. 그 친구가 저를 인생의 멘토라고 칭합니다. 그 친구가 삼성전자의 이스라엘 담당이 됐을 때, 동기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이랑 일하면 많이 힘들 거라고 얘기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오히려 기회가 될 거라고 말했어요. 제가 했던 조언이 큰 도움이 됐다고 인터뷰에서도 얘기하더군요. 6. 명지대학교 학생들을 위한 조언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아쉬운 점이 있다면, 도전 정신이 우리 세대보다 약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 활약할 무대를 좀 더 넓게 봤으면 좋겠어요. 학생들의 무대는 한국이 아니라 전 세계인데, 그렇게 뻗어 나가기 위해서는 언어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음악계에서 일하면 여러 나라 사람과 협업하게 됩니다. 외국어에 능통하면 사람들과 친분을 쌓기도 쉽고 일의 진행 속도도 빨라져요. 학생들이 영어를 포함해 제2외국어에도 도전을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또 저는 방목학술정보관이 세계에서 가장 좋은 도서관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명지대학교처럼 좋은 도서관을 가지고 있는 학교가 드물어요. 이제 MCC관도 개관했으니, 도서관과 캠퍼스를 잘 이용하면 학생들을 비롯해 명지대학교에도 부흥기가 올 것 같습니다. 7.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포부나 계획이 있으시다면 말씀부탁드립니다. A. 전대미문의 팬데믹 사태가 사회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오케스트라 운영도 많이 어려워졌고요. 그 충격에서 벗어나 위드 코로나 시대에 적응해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정상화라는 단어를 쓸 수 있겠죠. 소송 승소 후 개인적인 어려움에서 벗어났으니, 일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학교에 빚진 마음이 커요. 학생들 얼굴도 보고 싶고요. 서울시향과 함께 명지대도 재도약을 해야겠지요. 둘 다 큰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양쪽의 발전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 저의 가장 큰 바람입니다.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예술학부 영화전공 김영진 교수를 만나다! 작성자 김*현 조회수 1388 등록일 2021.11.30 첨부파일 0 영화진흥위원회는 한국 영화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고 한국 영화 및 영화산업의 진흥을 위해 설립된 공공기관이다. 김영진 교수는 영화주간지 씨네21 기자와 필름2.0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명망을 쌓은 평론가이자, 영화학자로 지난해 영화진흥위원회의 부위원장과 포스트코로나 영화정책추진단 기획위원장을 역임했다. 영화에 대한 뚜렷한 신념을 가지고 예술성과 대중성을 고루 갖춘 영화 제작을 지원하는 김영진 교수를 만나 다채로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Q. 안녕하세요. 간단한 소개와 더불어 지난 발자취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영화전공 교수이자,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인 김영진입니다. 영진위는 여러 영화 진흥 정책을 펼치는 공기관이에요. 부산에 본사를 두고 있어 주로 부산에서 일합니다. 원래는 평론을 오래 했어요. 90년대 초반부터 평론 활동을 했죠. 잡지 씨네21 창간 멤버이기도 하고요. 씨네21에 있다가 필름 2.0 으로 이직해서 평론을 썼죠. 그러다 2000년대 중반 좋은 기회가 생겨 명지대 교수가 됐습니다. 위원장직을 맡을 생각은 없었어요. 작년 영진위 위원으로 위촉되면서 부위원장과 포스트코로나 영화정책추진단 기획위원장을 맡아 코로나19 현장에 대응하고 지휘했죠. 올해 위원회 구조가 바뀌면서 다른 분들이 위원장직을 맡아달라 설득하셔서 이 자리에 올랐습니다. 임기는 1년이고, 연임할 수 있다고 되어 있는데 현재는 연임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에너지 소모가 크기도 하고, 하루빨리 학교로 돌아가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회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위원회 일이라는 게 회의의 연속이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일이 많아 이런 자리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위원장 취임 전에는 학생 가르치는 일이 제 적성에 맞는지 고민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잘 맞는 것 같아요. Q. 영진위의 위원장으로서, 한국 영화의 진흥을 위해 어떤 운영 계획을 펼쳐나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A. 영진위는 비교적 활동을 잘해왔던 기관에 속해요. 외국에서도 영진위에 선망의 눈길을 보내고요. 영진위는 독립영화, 다큐멘터리를 주로 지원하는데, 이런 지원 기구가 없는 일본의 젊은 영화인들이 많이 부러워합니다. 2000년대 중반 한국 영화 르네상스가 일어났을 때, 박찬욱, 봉준호 같은 한국 감독들이 수면 위로 올라왔던 것도 영진위의 역할이 컸어요. 한국 영화가 성장하면서는 독립영화나 중소형 영화, 지역 영화제에 대한 지원이 늘었죠. 그러다 작년 코로나19 사태로 주류 영화계도 위험해지면서, 극장과 새로운 영화 제작을 위한 투자가 어려워졌어요. 상업 영화 제작에 드는 돈이 보통 100억이라고 하면, 차츰 30억, 50억 영화도 제작이 안 되고 있어요. 독립영화는 제작비용이 대부분 10억 미만이고요. 양극화가 심해질수록 젊은 감독들은 기회를 얻기가 힘들어져요. 이런 흐름에 영진위가 새로 물꼬를 터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30억, 50억 정도의 중소형 IP를 가진 제작사를 지원하려고 합니다. 그런 규모의 영화를 3년 동안 열 편 정도 만들 생각을 하고 있고요. 제가 계속해서 주장하던 게 작은 규모의 대중 영화, 예술성과 대중성의 균형이 맞는 영화들을 통해 새로운 관객들을 유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거였어요. 그런 주장은 예산에 반영이 됐어요. 또 전국적으로 독립 예술영화관을 늘리고자 하는 계획도 있습니다. 서울에 집중된 영화 산업을 분산해서, 각 지역의 영화 생태계를 지원하는 사업을 집중적으로 해볼 생각도 있고요. 이런 세 가지 기조를 중심으로 해서 3년, 5년, 10년짜리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공표하려고 합니다. Q. 교수님께서는 오랜 시간 영화계에 몸담아 오셨습니다. 교수님께 영화란 무엇이며, 어떠한 매력이 있었기에 영화를 업으로 삼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A. 지금도 제가 영화를 좋아하는지, 스스로에게 종종 묻곤 해요. 그럴 때 숙소에서 옛날 영화들을 보다 보면, 내가 영화를 좋아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은 결핍이라든지 욕망을 가지고 있잖아요. 사람들이 종교로 삶의 불완전함을 해소하곤 하는데, 예술은 종교와는 다른 영역에서 우리의 결핍을 채워주는 것 같아요. 대리만족을 할 수도 있고, 깨달음을 얻기도 하고요. 영화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통해서 나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게 하면서 또 채워준다는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옛날에는 의미 있는 영화를 좋아했는데, 요새는 예술적인 기운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닥터 지바고 등으로 유명한 데이비드 린 감독의 라이언의 딸 이라는 영화를 최근 다시 봤는데 굉장히 좋았어요. 스토리도 좋지만 지금 다시 봐도 영상의 파워가 어마어마해요. 똑같이 카메라로 찍는데 저 사람의 화면은 어떻게 저렇게 파워가 있을까 감탄했어요. 내용도 지금 세태를 시사하는 면이 많았고요. 과거 영국이 배경인데, 편견과 그릇된 관념으로 개인을 린치하는 이야기거든요. 그 영화에서는 소수지만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사람들이 등장해서 감동을 줘요. 게다가 영화는 짧잖아요. 두 시간 집중해서 보고 나면 굉장히 뿌듯해요. 그런 매력이 있어서, 지금까지 영화를 업으로 삼고 있는 것 같습니다. Q. 영화계 진출을 꿈꾸는 명지대학교 제자들, 혹은 학업에 열중하고 있는 모든 명지대학교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시면 말씀 부탁드립니다.A. 요새의 교육은 지식을 전달하는 게 중요한 건 아닌 것 같아요. 지식은 어디서든 얼마든지 얻을 수 있으니까요. 학생 개인에게 잘 맞는 무언가를 찾을 수 있도록 자극을 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많이 안다고 평론을 잘 쓰거나 영화를 잘 찍게 되는 게 아니에요. 자기만의 인사이트가 있어야 생산도 할 수 있거든요. 그렇게 해서 국제영화제 단편 부문에 진출하는 학생들도 계속 나오고 있고요. 또 영화 감독이 되는 것만이 보람찬 일이 아니라는 것도 제자들한테 꼭 이야기합니다. 제가 전주영화제 수석 프로듀서를 7년 정도 했거든요. 일하면서 협찬 목록을 보는데, 샘표 의 홍보과장이라는 사람이 제 제자라는 거예요. 연락을 해서 이야기를 나눴죠. 번듯하게 잘 살고 있더라고요. 영화 공부 잘하고, 취업해서 밥벌이하고 사는 삶도 얼마나 보람차고 재미있어요? Q. 교수님만의 미래 계획이나 포부가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A. 75세까지 현장에서 일하는 게 꿈입니다. 평론도 오래 하고 싶고요. 현장에서 멀어지면 소위 감 떨어지는 말이라든지 행동을 하게 되거든요. 현장에서 계속 감각을 벼리면서 유효한 작업을 하는 사람, 저 사람은 계속 할 만해 하고 인정받는 사람으로 남는 것이 꿈입니다. 아이돌 가수를 넘어 배우로서의 도약을 꿈꾸는 모모랜드 나윤을 만나다 작성자 김*현 조회수 1830 등록일 2021.10.27 첨부파일 0 최선을 다해야 후회도 미련도 없다!아이돌 가수를 넘어 배우로서의 도약을 꿈꾸는 모모랜드 나윤을 만나다여기, 연예계에서 열정적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학우가 있다. 바로 예술학부 뮤지컬공연 전공 18학번 김나윤 학우다. 김나윤 학우는 2016년 아이돌 그룹 모모랜드 로 데뷔한 이래 무대에서 웹드라마까지 꾸준히 활동 영역을 넓혀 왔다. 모모랜드는 뿜뿜 , I m So Hot , Thumbs up 등의 곡으로 가요 프로그램에서 수상하고, 골든디스크, 서울가요대상 등 권위 있는 시상식에 이름을 올리며 대세 걸그룹 으로 자리 잡았다. 올해 상반기 웹드라마 1시 11분 에 출연하며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증명한 김나윤 학우를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인터뷰를 읽게 될 독자분들을 위한 자기소개와 근황에 대한 말씀 부탁드립니다.A. 안녕하세요, 모모랜드 멤버 나윤입니다. 팀 생활을 중점으로 두면서 개인적으로 하는 연기 활동에 매진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학교생활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신경 쓰고 있고요. 코로나19로 인해 할 수 있는 일들의 폭이 좁기 때문에, 이 시기에 자기 계발에 힘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Q. 김나윤 학우님은 2016년 인기 아이돌 그룹인 모모랜드 의 일원으로 데뷔하신 이래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계시는데요. 학우님께서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하기까지의 전 과정이 궁금합니다. 자세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어릴 때부터 노래 부르고 춤추는 게 좋았어요. 관심도 많아서 따로 연습하기도 했었고요. 서울공연예술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운 좋게 오디션 볼 기회가 생겼어요. 2년 6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연습생 생활을 하다가,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 모모랜드로 데뷔했어요. 사진 : (주)엠엘디엔터테인먼트 MLD EntertainmentQ. 연예계 활동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좋았던 순간과 힘들었던 순간이 있을 것 같은데요. 데뷔 이래 가장 좋았던 때가 있다면 언제였을까요? 그리고 힘들었던 순간이 있다면, 그 시간을 어떻게 이겨내고 극복하셨는지 궁금합니다.A. 가장 좋았던 순간이라면 역시 뿜뿜 으로 1위를 했을 때인 것 같아요. 아무래도 첫 1위였고, 그 노래가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기도 했으니까요. 그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가장 힘들었던 건 아무래도 데뷔 준비 기간이었던 것 같아요. 연습생 생활도 길었고 다이어트도 심하게 했었고 친구 만나는 일도 쉽지가 않았어요. 멤버들이 없었다면 견디기 힘들었을 거예요. 함께 생활하고 연습하며 서로에게 많은 의지가 됐죠. 또 가족들과 친구들도 응원을 아끼지 않았고요. 그 덕에 잘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활동하다 보면 슬럼프가 올 때도 있고, 힘든 일도 많은데 그럴 때마다 저는 혼자 견디기보다 친구들 혹은 부모님에게 고민을 터놓고 이야기하고 조언을 구하는 편이에요. 혼자 있으면 고민이 깊어져서 주변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기분을 전환하고 돌파구를 찾아요. Q. 모모랜드로 활동을 하신 지 근 5년 가까이 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연예계 활동을 해오면서 학우님만의 철학이나 가치관이 생기셨을 것 같은데, 이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A. 활동하면서 최선을 다해야 후회도 미련도 없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리고 정말 열심히 하지 않으면 주어진 기회를 잡을 수도 없다는 것도요. 그래서 무엇이든 열정적으로 하자 정도로 좌우명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뿜뿜 도 이렇게 잘 될 줄은 몰랐어요. 노래를 처음 받았을 때는 멤버들이 울기도 했거든요. 하지만 연습하고 열정적으로 활동했더니, 대중들에게 긍정적인 반응이 돌아왔고, 성적도 좋았죠. 그래서 더 힘을 얻고, 무엇이든 열심히 할 수 있게 됐어요. Q. 학우님께선 현재 명지대학교 예술학부 뮤지컬 전공에 재학 중이신데요. 학우님의 대학 생활이 궁금합니다. 대학을 다니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나, 기억에 남는 커리큘럼이 있으시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일단 저는 자연캠퍼스에서 학교 생활을 했어요. 학교를 꾸준히 나가려고 노력했는데, 굉장히 바쁠 때 학교를 입학하게 되어 동기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죠. 대학에 로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큰 캠퍼스에 설렜던 것 같아요. 또 동기들이 많이 반겨주기도 했어요. 과제를 알려주기도 하고 함께 연기 연습도 했고요. 함께 봉구스 밥버거를 먹으러 갔던 기억도 나네요. 동기들이랑 지금도 친하게 잘 지내고 있어요. 학교 다닐 때 동기들이 없었으면 너무 힘들었을 것 같아 이번 기회에 동기들한테 고맙다고 말하고 싶네요. 또 저희 학과장님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차태호 교수님께서 항상 배려해 주시고 챙겨 주셨어요. 교수님께 배운 것도 굉장히 많고요. Q. 학우님과 같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애쓰고 있는 우리 명지대학교 학생들을 위해 조언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앞서 말했듯, 뭐든지 열심히 하면 안 되는 게 없다고 생각해요. 저도 오랫동안 연예인의 꿈을 키워왔어요. 분명 힘든 일을 겪겠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력하면 기회가 온다고 생각해요.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자기가 잘 갖춰져 있어야 하겠죠. 그러니까 열심히 노력하고 연습하고 준비한다면 모두들 잘 될 거라고 믿습니다. 또 제가 가수 활동과 연기 활동을 하면서 중점을 두는 부분이 조금씩 달라요. 멤버들과 팀 활동을 할 때는 조화에 신경을 많이 쓰고, 혼자 연기 활동을 할 때는 개인 레슨을 통해 부족한 점을 보완하려고 하죠. 무엇이 부족하고 또 필요한지 생각하고 개선하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다들 노력하시고, 파이팅 하셨으면 좋겠어요. 응원합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이나 포부가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A. 저희 모모랜드는 앞으로도 꾸준히 활동을 이어나갈 계획이에요. 저 개인적으로도 연기 활동 열심히 하면서 대중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할 테니까, 관심 보여 주시고 많이 사랑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처음 137 1 2 3 4 5 6 7 8 9 10 다음 페이지 다음 끝